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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나까지 모두 5명을 관두게 했네" 유언장 남긴 농협 직원
노컷뉴스1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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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한 지역 단위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A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25일 오전 기자 회견을 열었다. 김대한 기자
전북의 한 지역 단위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A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25일 오전 기자 회견을 열었다. 김대한 기자

지난 12일 故 이용문 씨(전북의 한 지역단위 농협 계장)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신의 근무 장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초·중·고 전라북도 대표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고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상처를 입어 국가유공자가 될 정도로 매사에 성실했던 이 청년은 1년여간 폭언에 시달리다 결혼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실맨' 故 이용문 씨…"화장실도 제때 못가"2018년 1월. 전북의 한 지역 단위농협 직원으로 채용된 이 씨는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성실맨'이였다.

초·중·고 전라북도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몸에 밴 인사성과 성실함은 업무에도 스며들었다. 그렇게 5년여간 성실히 근무해 전라북도지사 상도 받았다.

특히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가 다쳐 국가 유공자가 된 사건은 주어진 일에 대한 그의 업무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런 이 씨의 불행한 직장생활은 2022년 1월 권 모 센터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권 센터장은 부임 첫날 실무자 이 씨와의 단 한 차례 상의도 없이 농산물 센터를 장날에만 열기로 하고 통보했다.

실무자인 이 씨는 "센터 개점 날을 줄이면 농민 불편 등 민원이 우려된다"고 제언했지만, 권 센터장은 "니 xx 직급이 뭐냐" 등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갑을관계를 확인시켰고 그렇게 둘의 갈등이 시작됐다.

실제 담당자인 이 씨의 제언처럼 장날에만 센터를 열어 농민 민원이 빗발치자 권 센터장은 이 씨의 보고 미흡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회피했다.

유족들은 25일 오전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우리 형(이 씨)은 혈변을 볼 정도로 항문 질환이 있는 환자였다"며 "그런 고인의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수시로 체크하며 괴롭혔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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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여자친구와 나누던 대화 일부 캡처. 김대한 기자
이 씨가 여자친구와 나누던 대화 일부 캡처. 김대한 기자

"너희 집 돈 많다며?"…금전 갈취까지 이어진 괴롭힘이 씨는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중에는 킹크랩을 사다 바치는 등 금전 갈취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 센터장이 지인을 통해 이 씨가 유복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수시로 '부자라서 재수 없다'는 말로 괴롭혔다"고 전했다.

가령 게임을 통해 커피를 사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김없이 "(이)용문이가 부자니까 사면 된다"는 식의 비아냥을 이 씨는 매일같이 견뎌야 했다.

심지어는 '킹크랩이 먹고 싶다'는 권 센터장의 말에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직접 가서 킹크랩 2마리(1kg당 시가 10만 원)를 사오는 등 협박에 의한 금전 갈취도 확인됐다.

또 2022년 10월 8일. 이 씨가 결혼식 날짜를 잡자 권 센터장과 동료들은 '수매 철에 결혼식을 잡는다'는 이유로 폭언을 쏟아냈다.

"5만 원만 내고 온 가족이 대동해서 뷔페를 쓸어버리겠다" 등 이 씨는 축하보단 비아냥과 괴롭힘을 견뎌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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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와 권 씨의 조사 결과가 담긴 회의록 등.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김대한 기자
이 씨와 권 씨의 조사 결과가 담긴 회의록 등.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김대한 기자

가해자와 노무사는 지인…"1차 극단적 선택 시도에도 변한 것 없어"급기야 이 씨는 2022년 9월 27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 결혼식을 불과 20일 앞두고서다.

다행히 이 씨는 늦지 않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지만, 농협 측은 가‧피해자와 업무를 분리하지 않은 채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괴롭힘으로 시작된 우울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으나 권 센터장은 이 씨가 복귀하자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등 모욕적인 행동을 지속했다.

특히 이 씨가 권 센터장의 폭언이 담긴 일기 형식의 컴퓨터를 교체해버리는 등 증거 인멸도 이뤄졌다.

유언장에서 이 씨는 "조사받기 일주일 전쯤 노무사에게만 말한 컴퓨터 내용(일기 형식의 고발 파일)이 어떻게 퍼진 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사건 조사를 진행한 노무사 A씨는 농협중앙회 출신으로 전북지역본부 APC(산지유통센터) 직원 교육을 담당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권 센터장과 이전부터 수차례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노무사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 센터장과 아는 사이임은 인정하면서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사 과정은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모두 무혐의로 끝난 조사 결과를 확인한 이 씨는 지난 12일 자신이 일하던 농협 근처에 차를 세워둔 채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이 씨의 유언장에선 "축하한다 권00. 매일 갈궈서 그만두게 한 직원들까지 이제 내가 5번째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권 씨와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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