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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신촌 두 모녀' 비극... 전기료 연체, 사용 흔적 없는 밥솥
한국일보1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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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전기요금 연체를 알리는 고지서가 붙어 있다. 김소희 기자
건강보험료와 전기요금을 연체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서울 신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녀는 정부의 위기가구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주민등록상 주거지와 실거주지가 달라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다. 앞서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의 판박이 비극이 석 달 만에 또 발생한 것이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3일 창천동 다세대주택에서 성인 여성 2명이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세입자가 숨진 것 같다”는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방 안에서 숨져 있는 60대 여성 A씨와 30대 딸을 발견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월세는 물론 전기요금과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생활요금 연체로 파악하는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취재진이 이날 찾은 신촌 모녀 거주지에서도 가난의 흔적이 쉽게 눈에 띄었다. 26㎡(8평) 크기의 방은 매트리스 두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주방 수납장에는 세간살이 하나 없었고, 냉장고도 텅 비어 있었다. 전기밥솥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듯 새 제품이나 다름없었다.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약 9만 원이 연체됐다는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또 “월세가 밀려 계약이 해지됐다”며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가 신발장 위에 놓여 있었다.

집 안을 청소하러 온 유품정리업체 관계자는 “이 정도면 사망한 지 최소 보름은 지난 것 같다”고 했다. 발견 당시 시신은 부패가 조금 진행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모녀를 신속히 구제하지 못한 건 지난해 11월 이사 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기존 거주지(서울 광진구)로 주민등록이 돼 있었던 탓이다. 광진구청 관계자는 “건보료와 통신비가 체납돼 8월 주소지를 찾았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서 “호적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해도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현 거주지인 서대문구청 관계자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숨진 모녀와 관련해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복지부는 숨진 신촌 모녀가 발견된 다음 날(24일),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의 불일치로 위기가구에서 빠지는 사각지대를 막겠다며 사회보장급여법 및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통신사와 협력해 발굴대상자의 연락처, 주택 동ㆍ호수 정보 등을 연계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한 발 늦은 대응이 또 다른 비극을 막지 못한 셈이다. 복지부는 이날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연락처 연계 대책을 담은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 없고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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