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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기시다 총리의 말에 '취해선' 곤란하다
오마이뉴스1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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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중의원에서 열린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일본 총리는 매년 1월 개회하는 정기국회(통상국회)에서 시정방침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을 보면, 그해 일본의 중점적 국내외 정책을 알 수 있다.

기사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23일 총리가 된 뒤 두 번째 시정방침 연설을 했다. 이 연설 중 외교안보 분야의 변화를 추적하면, 일본이 한국의 위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정권 출범 전인 2022년 1월 시정방침 연설에선 한국을 복잡한 수식어 없이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중요한 이웃인 한국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인 올해 시정방침 연설에선 중요한 이웃 앞에 "국제관계의 다양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이라는 긴 수식어를 붙였다.

주변국 외교의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는 나라 호명 순서에서도 2022년에는 중국, 러시아 다음에 한국을 배치했으나, 올해엔 중국, 한국, 러시아 순이었다.

기사다 총리가 한국 관련 표현을 격상한 이유는?

기시다 총리가 왜 1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위치 매김을 바꿨을까. 답은 비교적 간단해 보인다. 윤석열 정권이 전임 문재인 정권과 달리 일본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한일 갈등의 가장 핵심 사안인 강제노동에 대해 일본에 짐을 지우지 않고, 한국이 다 떠맡는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일본이 그토록 원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통한 대중 견제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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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총리(2019~2023)의 정기국회 시정방침 연설 중 한반도 관련 주요 내용.
기시다 총리의 변화된 표현에서 한일관계 미래가 보인다

이런 윤석열 정권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는 국교정상화 이후의 우호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다"라는 기시다 총리의 표현 변화로 이어졌다.

기시다 총리의 올해 시정방침 연설을 보면, 올해 한일관계가 어떻게 돌아갈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건전한 관계'는 "식민지 불법 지배는 없다"는 국교정상화 협정의 일본판 해석을 말한다. 따라서 이 말에선 윤 정부가 곧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의 의향에 따라 해결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 12일 공개한, 일본 전범기업 대신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대신 배상을 떠맡기로 한 안이 바로 그것이다.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의사 소통한다'는 말에는 중국 및 북한을 겨냥한 한일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조만간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중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쪽에서는 벌써부터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양국의 협상 진전 여하에 따라서는 5월보다 빨리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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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스위스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취리히국제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일본 역대 총리의 시정 방침 연설 속에 나타나는 한일관계 및 북일관계의 변화

일본 총리의 시정방침 연설을 시간 추이에 따라 살펴보면, 일본 정부의 한국 및 북한에 대한 자세 변화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때 일본 상대는 쭉 아베 신조 총리였다. 아베 총리는 문 정권 내내 한국을 차갑게 대했다. 2018년에는 한국에 대해 아무런 수식 없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는 이제까지 양국간의 국제약속과 상호신뢰의 축적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겠다"고 견제구를 날리더니, 다음 해엔 별도로 한국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또 총리 사임 직전의 2020년 마지막 연설에서는 한국을 과거형을 사용해 " 원래 기본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했던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에 관해서는 핵과 미사일 도발과 납치 문제를 비난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2019년에 직접 만나겠다는 표현을 쓴 뒤, 2020년에는 '조건 없는 만남'으로 표현을 격상했다. 이런 표현은 대일 강경책을 쓰고 있던 문재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교를 맺고 활발한 민간협력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은 강제동원 해법을 둘러싼 갈등을 이유로 만나지 않으면서 사실상 적국인 북한의 김 위원장과는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아베가 처음 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는 만남'은 이후 스가 총리와 기시다 총리도 이어받아 쓰고 있다.

2020년 가을에 총리에 오른 스가는 외교 노선에서는 거의 전임자인 아베 총리를 답습했다. 2021년 10월에 총리가 된 기시다는 자민당 파벌 가운데 가장 비둘기파인 고치카이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아베가 깔아놓은 강경 외교노선을 변화시킬 것인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이 강경 파벌의 위세에 눌려서인지 기시다의 타고난 보수 성향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 역시 아베의 아류로 볼 수밖에 없는 대외정책을 펴고 있다.

윤석열 정권, 기시다 총리의 유화적 표현에 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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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왼쪽) 외무상이 지난 23일 도쿄에서 열린 중의원 국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기시다 총리의 올해 시정방침 연설을 보고 5년 만에 한국이 일본한테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됐다고 흡족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기시다 총리가 그런 유화적인 발언을 하는 가운데서도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은 같은 날 정기국회 외교 연설에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말과 함께 조선인 강제노동의 장소였던 니가타현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강행 방침을 밝혔다.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상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한국이 뭐래도 우리 길을 가겠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에게 유화적인 것은 한국이 일본에 굽히고 들어오니까 그런 것이라고 보면 된다. 두 나라가 외교적으로 갈등할 때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양보해 푸는 것을, 보통 '굴복 외교' '굴종 외교'라고 한다. 기시다의 한국 관련 유화적 표현은 좋아하기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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