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세상 06 -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06 관례의 함정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도중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회창을 등에 업고 여러 통로로 불법 대선자금을 받고 있었는데, 이때 차떼기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뇌물을 전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정치자금 모금은 주로 계좌거래 등을 활용했는데, 1990년대에 시행한 금융실명제 이전에는 당연히 은행을 통한 정치자금 거래가 아주 자유로웠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아 중간에 여러 거래처를 걸쳐 놓으면서 소위 돈세탁을 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의 문민정부 출범 이후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가명, 차명, 무기명 계좌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정치자금 조달에 막대한 장애가 생기게 된다. 이에 정치인들은 편법 개발에 고심하다가 결국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측에서 현대 마이티 2.5톤 차량 1대에 현금을 꽉꽉 채운 뒤 그 자동차를 통째로 받는 방식을 고안해 냈습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한 때 떠들썩했던 사건인 소위 "차떼기 사건"을 찾아보았습니다. 금융실명제** 시행 때문에 정치자금 전달이 어렵게 되자 고육지책으로 만든 방법이라는 대목에서 이미 훨씬 더 큰 규모의 불법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누가 얼마나 처벌을 받았는지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건과 가까운 정치인이나 기업가 중에 처벌받은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모두 출세를 했다는 점입니다.


정황상 기업가의 잘못만을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관행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해야 하는 사회에서, 정치자금을 주지 않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불이익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정치 자금을 주지 않아서 회사가 망할 경우 임직원들이 얻는 고통 역시 무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업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자금을 대주는 기업에 도전하는, 하지만 정치자금을 대지 않는 신생 기업이 높은 퍼포먼스를 이룰 경우 정치권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임은 분명해 보이니까 말입니다. 아니, 그런 상황에서 돈을 대준 기업이 정치자금을 빌미로 정치권에 압박을 넣지 않는 것도 바보 같은 일입니다.

조금 더 과거로 가봅시다. 미국 철강왕으로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는 구입한 농장에서 석유가 터져서 부자가 됩니다. 이후, 미래를 예측하여 철강에 투자한 안목은 그가 뛰어난 기업가임을 증명해 주지만, 정치권을 매수하고 매점매석을 이용한 독점의 방식으로 경쟁자를 몰락시키는 식으로 사업을 불려 나간 어둠이 있기도 합니다. 일론 머스크보다도 돈이 더 많았다고 하는 석유왕 록펠러가 부를 쌓는 것 역시 무리한 독과점이 크게 한몫을 했습니다. 서양권 사람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었던 기저에는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이 있었습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며 어리고 철없는 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철없는 소리를 할 정도로 어리지는 않다보니 어느 정도 맞는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관행이나 부정을 모두 처벌하고,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을 모두 골라낸다면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얽혀있는 관계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고, 구조적인 문제로 누구를 가져다 놓아도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의 결점을 단편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또 다른 불합리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그냥 넘어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기업 총수가 부정을 저질러서 감옥을 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 기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으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고, 형을 살더라도 얼마가지 않아 특사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을 살게 한 것으로 처벌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사부재리*3의 원칙에 따라 상당히 작은 대가를 치우고 면죄부를 얻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적은 대가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면 기업가 입장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바보 같은 짓입니다. 큰 힘을 가질수록 작은 책임을 지는 사회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큰 힘을 가지려 하는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정의롭기 위해 가난해진 사람을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구조적인 모순으로 부정을 저지른 부자를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어버리는 사회는 모두가 불행합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 이러한 문제를 보정해 주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억울함을 방지하기 위해 엄정하고 공정한 헌법 기관이 있으며, 무관의 제왕*4 언론인에게도 막강한 힘을 부여하여 감시를 하게 만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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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밧줄의 오역)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 성서 [마태복음 19:23~24]


** 금융실명제 : 금융 기관에서 금융 거래를 할 때에 가명 혹은 무기명에 의한 거래를 금지하고 실명임을 확인한 후에만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긴급명령인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통해 1993년 8월 12일에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3 일사부재리 : 형사 소송법상, 판결이 확정되어 판결의 실체적인 확정력이 생기면, 그 뒤에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거듭 심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일


*4 무관의 제왕 : 공적 직급이 없음에도 막강한 힘을 가진 기자를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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